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트비아계 미국인 (문단 편집) == 기원 == 19세기 이전 라트비아 내 라트비아인들은 독자적인 민족 의식이 희박했으며 라트비아계 성씨를 가지는 경우도 드물었으나 19세기 중순을 기점으로 라트비아인들에게 민족어 교육이 시작되고, 귀족 계급이 아닌 라트비아인들도 성씨를 이름에 사용하게 되었다. 라트비아 지역에서 미국으로 이민가는 사람들 중에서도 라트비아인 정체성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19세기 후반부터 라트비아 출신 이민자들은 자신들을 러시아계 이민자가 아닌 고유의 라트비아어 성씨를 지닌 라트비아계 이민자라는 정체성을 내세우게 되었다.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러시아)|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인한 러시아 제국의 혼란기 와중에 상당수의 라트비아인들이 추가로 이민하였으나, 역시나 이민 비율이 가장 높았던 것은 유대계 라트비아인들이었다. 라트비아는 리투아니아, 폴란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에 비하면 유대인 인구가 많지는 않았지만 이들 역시 러시아 제국의 전반적인 반유대주의에 위협을 받기는 마찬가지였고, 이들 중 상당수가 1905년부터 1917년 사이 기회가 되는대로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1차 대전 이전에는 당시 라트비아 전체 인구의 7.4%에 해당하는 19만여 명의 유대인들이 거주했으나 1920년대에는 9만 5천여명 정도로 감소했다.[* 이후 2차대전 당시 홀로코스트의 영향으로 오늘날 라트비아에 거주하는 유대인 인구는 5천여 명 미만이다.] 공식적인 통계상으로 1차 대전부터 2차 대전 사이 라트비아가 소련 점령 이전 독립국이던 시절 4,669명의 라트비아인들이 미국으로 이민하였다 한다. 2차 대전 당시 소련이 라트비아를 점령하자 약 '''4만여 명'''에 달하는 라트비아인들이 연합군 진영으로 탈주하여 미국으로 망명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